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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鏞九
趙鏞九1861. 1. 18 ~ 1925. 2. 27
경북 예천(醴泉)의병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강년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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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1년 1월 18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지보면(知保面) 지보리(知保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양반 출신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의 자급을 받아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의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국권상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추원의 구성 역시 찬의(贊議) 15명으로 급감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추원 의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1907년 4월 이강년이 충청북도 영춘(永春)에서 거병하여 충북·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군수·물자·자금 등의 지원을 담당하는 좌종사부(坐從事部)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이강년 의병부대가 충북 청풍(淸風)의 작성(鵲城) 전투에서 패할 때까지 종군(從軍)하였고, 이후에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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