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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규

金季圭

1897. 11. 10 ~ 196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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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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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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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1월 10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갈상동(葛上洞, 현 신리리)에서 태어났다. 영덕 지역에서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장터 만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시위는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되어 이튿날 오후 5시 포항의 일본군 헌병대와 대구의 일본군 보병 80연대가 합세하여 시위대를 향해 발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창수면의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도 영해면의 만세 시위에 참가하려고 길을 떠났으나, 도중에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영해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고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박치운(朴致雲)·이현설(李鉉卨)·이현석(李鉉奭) 등이 이끄는 200여 명의 군중이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당시 이현우 등의 시위 권유에 참여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또한 시위대는 주임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들이 마을 곳곳에 숨겨둔 여러 잡물과 서적들을 파괴한 후 오후 7시에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군경에 의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면서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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