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식
金界植1893. 10. 29 ~ 1943. 11.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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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9) 1893년 10월 29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거산면(居山面) 세동리(細洞里)에서 태어났다. 당시 나이는 26세였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8일 오전 9시 노덕면(老德面) 내리(內里)에서 시작된 북청군의 만세 시위는 3월 중순 거산면·노덕면·신창면(新昌面)·양화면(陽化面)·속후면(俗厚面)·평산면(坪山面) 등 북청군의 남부 지역과 상거서면(上車書面) 등 서부 지역으로 확산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북청군에서는 한국인 관리를 포섭하기 위한 자금 모집 운동이 비밀리에 전개되었다. 함흥군(咸興郡) 주북면(州北面)에 거주하던 천도교인 이기완(李岐完)은 1919년 2월 하순경 서울의 천도교(天道敎) 중앙총부에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중앙총부의 간부로부터 민족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관직에 있는 한국인을 포섭하기로 하였다는 이야기와 포섭 자금 30만 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자금 모집 운동의 함경도 책임자로 활동할 것을 수락하였다. 3월 초 귀향한 이기완은 홍원군(洪原郡)의 천도교 홍원교구에서 천도교 전교사(傳敎師) 이도재(李道在)를 만나 자금 모집 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의덕리(儀德里)에 거주하던 이도재는 이원군 및 인접한 북청군의 자금 모집을 담당하겠다고 자청하였다. 3월 10일 북청군에 도착한 이도재는 천도교 북청교구의 초대 교구장을 지낸 이유년(李有年)과 조경항(趙敬恒) 등 10여 명을 만났다. 그리고 자금 모집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촉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도재와 이유년의 적극적인 권유로 자금 모집 운동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후 이유년·조경항 등과 함께 북청군에서 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4월 14일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5개월여 동안 옥고를 겪었다.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 예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면소되면서 방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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