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선
姜悌銑1888. 6. 2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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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88년 6월 25일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남부면(南部面) 부공리(婦貢里)에서 출생하였다. 가족관계와 성장 과정은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만주(滿洲)로 건너간 경위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지만, 1926년경 정의부(正義府) 지방조직의 구장(區長)에 임명되었으므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20년 전후 도만(渡滿)한 것으로 판단된다. 독립운동 단체에 속한 재만(在滿) 이주 한인 사회의 한 단위를 책임지는 자리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애국심이 바탕이 되는 인품과 연령도 관계 있지만, 그 지역 거주 한인들과 오랜 기간 생활하였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26년 (음)2월 28일 정의부 지방조직의 제7구장에 임명되었다. 1924년 11월 24일 통의부(統義府)를 비롯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고본계(固本契)·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 등 8개 단체가 통합해 성립된 정의부는 하얼빈에서 어무현(額穆縣)을 거쳐 북간도(北間島)까지 선을 그어 그 이남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 사회를 관할하는 대규모 독립운동 단체였다. 이 광활한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는 1926년 10월경, 정의부가 자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만 5,362호에 약 7만 6,800여 명이었다. 따라서 정의부는 대규모 한인 사회의 생계와 안전을 도모하고, 그를 바탕으로 조국 독립운동을 이끌어 가기 위해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지방조직의 체계를 100호(戶)는 구(區), 1,000호는 지방(地方)이라는 단위로 정하였다. 10개의 구가 하나의 지방을 구성하게 되었고, 지방의 상급 기관으로 총관(總管)을 설치해 총관이 몇 개의 지방과 그 하부인 구를 관할하도록 하였다. 구의 책임자를 구장, 지방의 책임자를 지방장이라 호칭하였으며, 구장 밑에는 십가장(十家長)이 있었다. 제7구장은 류허(柳河) 총관 밑의 구를 책임지는 위치로, 하이룽현(海龍縣)의 북산성(北山城)·양수하자(揚樹河子)·마패자(磨碑子)·가하천자(可河川子) 등과 류허현(柳河縣)의 일부까지 포함해 13개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담당하는 지방조직이었다. 구장은 2명의 행정위원과 함께 총관의 지시를 받아 자치행정 사항을 처리하는 임무를 가졌다. 총관의 지시 사항은 중앙조직에서 결정해 총관에게 하달한 것들이다. 『정의부공보(正義府公報)』나 『중앙통신』과 같은 공보물을 관할 한인에게 열람토록 하고, 산업 부흥을 위해 중앙에서 결정한 사항을 지시받아 주민을 선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 자치 및 의용군의 활동을 위해 의무금을 징수해 중앙에 보내거나, 의용군 소속 독립군이 무장 활동을 위해 이동할 때 통신 및 안내의 임무 등도 수행하였다. 1927년 (음)2월 28일 류허 총관인 김우근(金宇根)의 명령을 받고 관할 지방 한인 100여 명에게 봉천소양(奉天小洋) 1,300원의 의무금을 징수하였다. 7월 3일에는 한인 가옥 11호를 방문해 77원을 징수해 중앙본부로 보냈다. 같은 해 음력 10월 말에는 총관에서 내려온 검무원(檢務員) 김병철(金炳哲)에게 중앙의 지시를 전달받고, 교육비 및 지방비 명목으로 27호에서 1,438원을 징수해 전달하였다. 이외에도 수차에 걸쳐 총관과 중앙본부의 지시를 수행하다가 1928년 2월 27일 정의부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의 하이룽 영사관 분관(分館)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 장소는 하이룽현 북성자(北城子) 남문 밖에 있는 신행범(愼行範)의 집으로, 그는 친일 집단인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 지부 서기였다. 정의부 지방조직의 책임자 중 탁월한 활동을 보였기에 유인하여 체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9년 2월 8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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