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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福今

趙福今

1911. 7. 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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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福今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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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근우회 하동지회
  • · 하동청년동맹
  • ·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 ·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 · 전북교원비밀결사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 ·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사건
  • · 전북교원비밀결사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11년 7월 7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읍내면(邑內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경순(張敬淳)이다. 1928년 근우회(槿友會) 하동지회, 1931년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등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1월 26일 경남 진주(晉州)에서 여자잠업강습소(女子蠶業講習所)를 졸업한 후 하동군에서 여성단체 및 청년단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7년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가, 1927년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1928년 7월 1일 하동군에서 김한순(金漢順)·채소정(蔡小丁) 등과 함께 근우회 하동지회를 조직하고, 제영순(諸英順)과 함께 서무재정부(庶務財政部)를 맡았다. 1929년 3월 24일 근우회 하동지회 제2회 정기대회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연구부(政治硏究部)를 맡아 활동하였다. 1930년 4월 6일 하동지회 전국대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6월 1일 하동청년동맹(河東靑年同盟) 집행위원 겸 여자부장(女子部長)으로 선출되는 등 조직의 간부로서 활동하였다. 한편, 1928년 코민테른의 12월테제 이후 직접적인 대중투쟁의 선봉에 서면서 1931년 부산진(釜山鎭)에 있는 조선방직회사 직공이 되어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5월 27일 고광한(高光翰)·윤달선(尹達善) 등이 주도한 ‘격문(檄文)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부 내 전 공장을 일제히 파업케 하고자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곳곳에 문서를 배포하였다. 6월경에는 『노동자』라는 신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활동을 하다가, 7월 13일경 김태영(金台榮) 등과 함께 붙잡혔다. 그해 8월 5일 일명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釜山赤色勞動組合協議會) 사건’으로 송치되었고, 12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1931년 7월 25일 대구부(大邱府)에서 같은 하동 출신의 권대형(權大衡) 등이 조직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 조직인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에 참여하였다. 기관지 『봉화(烽火)』, 『코뮤니스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하고, 전매국이나 고무공장 등에서 운동가를 규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함께 활동하던 중,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과가 주도한 검거 선풍 때 붙잡혔다.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송치되었으나, 1932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불기소로 풀려났다. 1933년 8월 6일 이른바 ‘전북교원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되어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전주경찰서(全州警察署) 형사에게 붙잡혀 전주로 압송되었다. 전라북도 임실경찰서에서 오랫동안 취조를 받은 후, 1934년 4월 김태순(金兌淳)·박성무(朴性武) 등과 함께 전주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 그해 5월 초순경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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