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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彩1889. 3. 28 ~ 1949. 6.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부여군 임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9년 3월 28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邑) 비정리(飛亭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교주 손병희(孫秉熙) 등이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가, 3월 6일 임천면 읍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부여군의 만세운동은 3월 2일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같은 날 오후 6시경 민영순(閔泳淳)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논산(論山) 천도교구의 김태호(金泰昊)가 오후 9시경 부여면 천도교구실로 와서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등 6명에게 독립선언서 40장 1묶음을 전달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은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발송한 것이니 긴급하게 배포해 달라”고 당부하자, 김종석·황우열 등은 다음날 새벽까지 부여 각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3월 6일 새벽 박용화(朴容和)로부터 긴급하게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즉시 박용화의 집으로 가서 박성요(朴性堯)·황우경(黃宇京)·문재동(文在東)·정판동(鄭判同)·최용철(崔容澈)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의 내용과 교주 손병희의 활동을 확인하고, 임천면의 만세시위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 결과 모두 만세시위를 펼치자고 결의하고, 장날인 당일 임천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오전 7시경 박용화 등과 함께 임천 읍내로 가서 곳곳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하고, 시장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여 이에 공감한 상당수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박용화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구교리(舊校里)에 위치한 임천시장·임천면사무소·임천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이동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임천헌병주재소 앞에서 가서 다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이때 박용화 등과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 “한국은 이미 독립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독립의 권리를 달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들이 만세시위를 중지하라고 명령하였지만, 이에 불응하며 지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결국 부여헌병분대로 연행되었고, 조사를 받은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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