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燮
鄭泰燮1900. 3. 20 ~ 1965. 8.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1919년 합천군 대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900년 3월 20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대병면(大幷面) 장단리(長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합천군 대병면 창리(倉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에서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가 지역에 전해진 후, 1919년 3월 18일 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가회면(佳會面)이 연합한 삼가(三嘉)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거의 매일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독립선언서 500장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 대병면을 비롯한 합천군의 여러 지역에 이를 배부하였다. 임상종(林尙鍾)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한 후 만세운동을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서 귀환하였고, 이기복(李起馥)은 서울에서 내려온 백산면의 친구 이언영(李愿永)에게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임상종·이언영과 함께 지역 유지 등에게 선언서를 보이고 대병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권영두(權寧斗)·권중박(權重璞)·권양희(權良熙)·송헌기(宋憲基)·정시권(鄭時權) 등 20여 명이 거사에 찬성하고 함께 준비하기로 하였다. 이들과 함께 3월 18일 금곡리(金谷里)의 곽씨산정(郭氏山亭)에서 모여 구체적인 준비에 대해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창리(倉里) 시장의 장날인 3월 20일로 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사전 작업과 역할 분담도 논의하였다. 우선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 등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면내 각 마을별 주민 동원을 위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병면으로 통합되었던 고현(古縣)·대평(大平)·병목(幷木) 등을 중심으로 지역을 나눈 후 연락을 담당할 주도자를 각각 선정하였다. 거사일인 3월 20일 주민들을 이끌고 창리 시장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사전에 연락을 받은 대병면 각 마을의 주민들이 사전에 배포된 태극기를 소지하고 모여 있었다. 당시 만세시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약 4,000명을 헤아렸다. 오후 1시경 함께 거사를 계획한 권영두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임상종·권영두 등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따라 부르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창리 시장을 순회한 후 창리경찰관주재소와 대병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 내부에 진입하였을 때 일제 경찰들이 총격을 가해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분노한 시위대를 이끌고 일제 경찰을 공격하며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집기와 문서류를 마당으로 끄집어내어 소각하였다. 이어서 인근 면사무소에도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집기와 건물을 파손하고 서류·장부 등을 앞마당에서 불태웠다. 대규모 시위대가 만세시위를 거행하자 일제 군경은 무자비하게 진압을 자행하였다. 파견된 일본군 10여 명을 포함한 일제 군경 수십 명은 시위대를 향해 총검을 휘두르고 발포하였다. 결국 시위대가 해산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임상종·송헌기·권영두·유인수 등 54명이 붙잡혔다. 이때 체포된 54명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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