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源
鄭泰源1869. 4. 22 ~ 1953. 4.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1919년 울산군 언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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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69년 4월 2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북면(上北面) 지내리(地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울산군 언양면(彦陽面)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하순 울산군 상남면(上南面)에서 천도교 인사들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이무종(李武鐘)·이규인(李圭寅)·이성영(李成榮)·강경찬(姜庚贊)·최해선(崔海璇)·이규경(李圭庚) 등은 4월 2일 언양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하지만 일제 군경에게 천도교도 최해규(崔海圭) 형제·곽해진(郭海鎭)·유철순(兪哲淳) 등이 예비 검속되었다. 이후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도자들은 4월 1일 밤 이규인의 집에서 다음날 거사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2일 이무종 등은 태극기를 감추고 언양면 읍내 장터로 이동하였다. 주도자들은 장날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준 후, 장터 한복판인 언양면 남부리(南部里) 도로 위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때 읍내 장터에 있다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주도자 등을 체포하려는 일제 군경을 향하여 투석전을 벌였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일제 경찰과 육박전을 벌이며 총기를 탈취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재소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일제 군경의 총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러한 일제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결국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하지만 이후 붙잡혀 체포된 다른 40여 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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