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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判伯

鄭判伯

1897. 4. 22 ~ 1971.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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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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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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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합천군 초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4월 22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초계면(草溪面) 관평리(官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초계면 초계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에서는 3월 18일 백산면(栢山面)·상백면(上栢面)의 주민들이 주도한 삼가면(三嘉面) 읍내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23일 13,000명이 모인 삼가시장 만세시위로 절정에 달할 때까지 군내 각 지역에서 사실상 동시 다발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성만영(成萬永)·이원화(李源華)·전하선(全夏善)·김덕명(金德明)·구재범(具在範)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초계장터 장날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역할을 분담하여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와 독립선언 전단 등을 제작하였다. 태극기는 나무에 문양을 새겨 찍어냈고, 효과적으로 주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각 마을별로 연락도 분담하였다. 3월 21일 이원호 등과 함께 미리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가지고 초계장터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오후 1시경 독립선언서를 읽은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장터에 있던 사람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 전단을 나눠 주었다.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어 만세를 부르며 나아가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따라 부르고 대열을 맞춰서 행진하였다. 4,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를 지휘하여 초계우편소로 가서 내부의 기물 등을 파손하였다. 그리고 일제 헌병대나 합천경찰서 병력의 출동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하여 통신선을 절단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초계경찰관주재소로 돌진해 건물과 유리창을 투석 등으로 파괴하였다. 또한 시위 진압을 위해 공포탄을 발사하는 일제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하는 등 적극적으로 맞섰다. 합천경찰서에서 지원한 병력이 도착하여 일제 경찰 등과 합세하고 본격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총격을 가하여 결국 김장배(金長培) 등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함께 시위를 주도하던 이원탁(李源鐸) 등 1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그리고 성만영·김덕명·이원화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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