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金光壽1878. 2. 28 ~ 1939. 11.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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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78년 2월 28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北面) 부구리(富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3일 부구리 흥부시장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11일 매화리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남병표(南炳豹)·전병항(田炳恒)· 부구리의 김일수(金日壽)·김재수(金在壽)·김도산(金道山)·김서천(金瑞天)·김봉문(金鳳文)·황영백(黃永伯)·박양래(朴陽來)·이봉의(李鳳儀)·나곡리의 홍우현(洪禹鉉) 등과 부구리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4월 13일 부구리 흥부시장 장날을 거사 일로 정한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울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3일, 흥부시장에는 많은 군중이 몰렸다. 동지들과 함께 장터에 나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만세를 외쳤다. 수많은 군중이 만세를 외치자 헌병이 출동하였다. 헌병의 진압으로 일단 해산하였지만, 저녁에 다시 시위가 벌어졌다. 시장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고 밤이 깊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헌병보조원이 총을 겨누고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해산하지 않고, 헌병의 총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헌병이 돌을 주워 손등을 때렸지만 총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으며, 이를 본 또 다른 헌병보조원이 덤벼들자 이 보조원의 총도 움켜잡고 맞섰다. 이에 헌병들은 총을 발사하였고, 총소리에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19년 4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직무집행방해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동일한 형량인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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