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學柱
丁學柱185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서흥군 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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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2)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도면(道面) 국대리(菊垈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1세로 185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서흥군 도면 능리(陵里)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흥군의 만세시위는 3월 10일 도면 능리에서 시작되었다. 도면 두무리(杜茂里)에 사는 개신교 전도사 김성항(金成恒)이 평양에서 윤종식(尹宗植)으로부터 받은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교회에 전달하였다. 이때 도면 두의리(杜義里)에 사는 박이도(朴履道)·원용목(元用睦), 교사 원용팔(元用八)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능리 장날인 3월 10일 아침 8시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만세시위 계획을 감지한 일제 헌병이 3월 9일 저녁 6시경 원용목·원용팔을 체포하였고, 다음날 박이도를 연행하였다. 이로 인해 3월 10일 계획되었던 만세시위가 무산될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일 소사면(所沙面) 송화리(松花里)에 사는 김두순(金斗淳)과 서당 교사 김종철(金宗喆) 등이 송화리 서당 앞마당에서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능리로 진출하였다. 소사면 방곡리(防谷里)에 거주하는 서당 교사 원광흠(元光欽)은 학생들을 독려하면서 함께 능리 장터로 이동하였다. 3월 10일 오후 4시경 능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도면 교회당에서 교인들과 부인 10여 명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김두익(金斗益)·구성빈(具聖彬)·김원보(金元甫)·유병관(劉秉寬)·유기호(劉基鎬)와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일제 군경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구성빈·김두익 등을 체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일자미상일에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4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독립만세를 외친 행위는 만국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자원하는 국가는 독립을 승인한다는 취지에 의거한 것이므로 보안법 위반과 관련이 없으며, 조선이 독립된다는 사실에 기뻐서 만세를 부른 것 뿐이다’라며 상고하였으나, 그해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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