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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海璟

鄭海璟

1877. 12. 3 ~ 1926.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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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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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橫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횡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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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횡성군 횡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7년 12월 3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횡성면(橫城面) 내지리(奈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기종(鄭紀鍾)이다. 감리교인이며 사숙교사(私塾敎師)를 하였다. 1919년 4월 1일 횡성군 횡성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횡성면에서는 3월 27일 신재근(申在根)·최종하(崔宗河) 등 천도교인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주도자 등이 붙잡혔다. 이때 검거되지 않은 천도교 대교구장 최종하가 다시 횡성면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천도교인을 규합하였다. 이러한 계획을 알고 탁영재(卓英才)와 함께 동참하기로 한 후, 감리교인을 규합하였다. 이후 횡성면 청년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하였다. 거사일인 4월 1일 횡성면 장터로 향하였다. 횡성면으로 가는 길목에는 천도교 측에서 장꾼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리며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있었다. 장터의 상점 가운데 일부는 만세시위를 위해 철시하였고, 일부는 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터에는 횡성군민을 포함해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소초면(所草面)과 인제군(麟蹄郡) 서화면(瑞和面) 등 인근 지역의 천도교인들이 만세시위 참여를 위해 도착해 있었다. 오후 5시경 1,000~1,3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 앞으로 나와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서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자 장터에 모인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를 돌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부 참여자는 돌과 몽둥이를 들고 철시하지 않은 상점과 관공서 등을 공격하였다. 이처럼 만세시위가 고조되자 횡성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출동해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며 위협하였고, 일제 헌병 고지마(小島)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최동수(崔東壽) 등이 고지마를 끌어내린 후 밟고 구타하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무력으로 탄압하여 잠시 해산하였다. 오후 7시경 시위대를 인솔하여 다시 장터에 모인 후 독립만세를 외치고 헌병분견소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이미 원주에서 지원받은 수비대와 함께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던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결국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1년 3월 17일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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