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鄭亥得

鄭亥得

1899. 1. 15 ~ 1930. 2. 1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亥得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9년 1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만세시위는 당시 서당 훈장을 하던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전국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후, 평소 신뢰하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4월 1일로 예정되어 있던 연극 공연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자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민영갑 등은 거사 당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시위를 시작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공연 중인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며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이러한 호소에 공감한 관객 수십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연달아 외쳤다. 이에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시위대는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출동해 만세시위 참여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자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