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慶洙
趙慶洙1885. 4. 1 ~ 1919. 4.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5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의덕(義德)·경수(敬洙· 敬秀)·경숙(敬淑) 등이다. 당시 원곡면에서는 3월 말 경부터 각 마을 단위로 주민들에 의해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나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4월 1일 오전부터 면민들의 만세시위 참여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저녁 8시경 원곡면사무소 앞에 나가 면민 1,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유석(李裕奭)·이근수(李根洙)·이덕순(李德順)·이희룡(李熙龍)·이양섭(李陽燮)·최은식(崔殷植) 등과 함께 원곡면민의 주도자로서 강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원곡면장 남길우(南吉祐)를 앞세워 성은고개를 넘어 주재소와 우편소를 파괴할 목적으로 시위대 행렬을 따라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양성면(陽城面)으로 이동하였다. 이날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에 소재한 양성경찰주재소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려던 양성면민 1,000여 명과 합류하여 연합시위를 벌였다. 먼저 양성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향해 투석하여 일제 경찰을 겁박해 도망치게 하고, 사무실의 집기와 가구 등을 훼손한 뒤 방화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와 양성면사무소를 습격해 일장기를 훼손하고, 사무실 내의 집기와 금고 등을 끄집어내 부순 뒤 석유통을 가져와 불을 질러 건물을 전소시켰다. 또한 도끼를 구해와 전신주를 절단하여 넘어뜨리고, 일본인의 상점과 집을 습격하여 파괴하고 방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펼쳤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돌아와 시위대와 함께 재차 원곡면사무소를 방화하여 전소시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3일부터 일제 헌병대와 경찰이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취조와 심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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