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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基福

趙基福

1897. 7. 13 ~ 194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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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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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연백(延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연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연백군 은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7월 13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은천면(銀川面) 연남리(蓮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곡물검사원으로 재직하였고, 3월 30일 연백군 은천면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최초 주도적으로 계획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최은희(崔恩喜)는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에 서울에서 비밀리에 가져온 ‘동포여 일어서자’는 격문을 고향의 젊은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이때 사립 창동학교 교사 이정식(李廷植)·송흥국(宋興國)과 함께 최은희가 가져온 격문을 읽었다. 이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유재현(劉在賢)과 조두섭(趙斗燮), 인천상업학교에 다니던 유택선(劉澤瑄), 잡화상 조면식(趙冕植)·염천태(廉天太)·이완구(李玩求)와 함께 배천장터가 열리는 3월 30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송흥국은 금융조합에서 빌린 등사판을 이용해서 최은희가 서울에서 비밀리에 가져온 독립선언서와 격문 등을 등사하였으며, 나머지 인원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였다. 일제 관헌은 배천장터가 열리는 3월 30일 만세시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3월 30일 정오에 모인 개신교 청년과 학생 등은 물러서지 않았다. 송흥국은 장터 정중앙에 갖다 놓은 절구통 위해서 만세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충고문」을 낭독하였다. 일제 관헌의 힘으로 2,000여 명에 달하는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할 수 없게 되자, 일제 헌병들이 결국 출동하여 위협사격을 하면서 강경 진압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에게 배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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