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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언

金光彦

184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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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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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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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안악(安岳)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안악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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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0)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출생으로서 1919년 3·1운동 당시 72세였다고 하므로 1848년생으로 추정된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간 사립 선명학교(善明學校) 교장 박치간(朴致幹)과 유용원(柳龍源)·정계로(鄭啓老) 등은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귀향한 후 안악군에서도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모두 기독교인이었던 이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안악군 은홍면의 장날인 3월 11일 온정리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거행하기로 하였다. 은홍면은 안악군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였고, 면 소재지인 온정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의 특성상, 일제는 이곳에 헌병 주재소를 설치하고 한국인들의 동향을 감시해왔다. 박치간·정계로 등은 은홍면 학산리(鶴山里)에 있던 유용원의 집에서 만세 시위를 준비하기 위한 비밀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만세 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은홍면과 인접한 안악군의 북부 지역인 대행면(大杏面)과 서하면(西河面) 등 세 개의 면에 있는 여러 교회에 연락을 취하여, 3월 11일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3월 11일 오전 11시경 각 면에서 모인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 명의 주민이 온정리교회(溫井里敎會) 지도자인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 모였다. 이들은 먼저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박치간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일동은 정의와 인도(人道)에 입각하여 만세 시위를 질서 있게 전개할 것을 맹세하였다. 박치간·정계로·정공로(鄭公老)·고병국(高炳國)·김광은(金光銀)·유형근(兪亨根)·이문욱(李文旭) 등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72세의 고령에도 박승도(朴承道)·유용준(柳龍俊) 등과 함께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태극기와 함께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운 시위대가 시가 행진을 전개하자, 장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이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대에 합류하여 규모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시가지를 두 번 돌고나서 온정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 헌병 1명과 한국인 헌병보조원 2명이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헌병과 헌병보조원들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승강이가 벌어진 상황에서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박승도가 헌병의 총검을 빼앗은 후, 한국인 헌병보조원들을 때렸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도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대항하였다. 헌병의 무차별로 발포하여 김학규(金學圭)·박승도·전인식(全仁植) 등 3명이 사망하였고, 10여 명의 중상자와 수십 명의 경상자가 발생하였다. 헌병들의 계속되는 발포로 시위대가 흩어지는 가운데 박치간·정계로·정공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이때 어깨에 총상으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고 전하나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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