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弼基
玄弼基1926. 3. 22 ~ 1950. 3.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회복연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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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926년 3월 22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하리면(下里面) 오류리(五柳里, 현 예천군 은풍면 오류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주(延州)이다. 안동농림학교 재학 중인 1944년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44년 경북 안동(安東)의 안동농림학교 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이라는 비밀결사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잠자는 우리 민족을 깨우며 오직 조국의 독립회복”에 조직의 목적을 두었으며, 일본의 공공기관을 파괴하고 후방을 교란하여 일본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한편 연합군 상륙에 유리한 행동을 함으로써 조속히 한국의 독립을 쟁취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안동농림학교 10회생으로서 조선독립회복연구단 조직에 참여한 후, 항일투쟁을 위한 계획 수립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말경 단원들과 함께 1차 거사를 계획하였다. 먼저 밤을 이용해 교통과 통신을 차단한 후 안동의 경찰서와 헌병대를 기습 공격해 무기고를 장악하고, 확보한 무기를 가지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또한 악질 일본인을 처단하고, 읍사무소·우체국 등 관공서를 파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우선 야음을 틈타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하는 연습을 진행하였으며, 1차 거사 계획이 성공하면 곧바로 경북 의성(義城)으로 가서 대구(大邱)에서 출동하는 일본군 제24부대와 교전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1945년 2월 17일을 1차 거사일로 결정하였으나 일부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계획 실행이 연기되었고, 다시 3월 10일을 제2차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러던 중 3월 초 미국 선교사 사택에서 책을 훔쳤다는 이유로 동기 강순원(姜淳遠)과 함께 붙잡혀 안동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이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의 정체와 거사계획 등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후 관련자 전원이 검거되었다. 미결수 신분으로 안동경찰서와 안동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겪다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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