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은
金光銀1896. 3. 25 ~ 1942. 3.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은홍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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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3월 25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은홍면(銀紅面) 두양리(斗陽里)에서 태어났다. 안악군의 만세 시위는 광무황제(고종) 장례식에 참여하러 서울에 다녀온 선명학교(善明學校) 교장인 박치간(朴致幹)과 정계로(鄭啓老)·유용원(柳龍源) 등이 은홍면 온정리(溫井里) 장날인 1919년 3월 11일의 만세 시위를 계획하면서 시작되었다. 은홍면 학산리(鶴山里) 유용원의 집에서 비밀리에 모인 이들은 시위를 위해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또한 인접한 을홍면·대행면(大杏面)·서하면(西河面)의 여러 교회와 연락을 취하였다. 3월 11일 오전 11시경 각 면에서 온 수백 명의 주민은 온정리교회 지도자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 모여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먼저 박치간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일동은 정의와 인도(人道)에 입각하여 만세 시위를 질서 있게 전개하기로 서약하였다. 박치간·정계로·유용준·박승도(朴承道)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손에 들고 시가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에 장꾼들도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였다.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시가지를 두 번 돌고 나서 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때 일본인 헌병 1명과 한국인 헌병 보조원 2명이 시위대를 막았다. 헌병과 헌병 보조원들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빼앗으려 하였고, 이에 시위대가 저항하면서 승강이가 벌어졌다. 또한 그 과정에서 헌병의 총검을 빼앗은 박승도는 헌병 보조원들을 때렸고, 나머지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자, 시위대는 주재소에 돌을 던졌다. 그러나 헌병들의 발포가 계속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헌병의 계속되는 발포로 인해 시위대는 흩어졌고, 그 과정에서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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