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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武彬

趙武彬

1886. 7. 20 ~ 195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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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武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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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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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제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86년 7월 2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우면(舊右面) 낙천리(樂泉里, 현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구우면에서 서당의 훈장으로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제주도에서는 1919년 3월 21일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시장에서 최초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제주군 신좌면에 거주하는 김시범(金時範)과 김시은(金時殷)은 지역 일대에서 유학자로 존경받았던 김시우(金時宇)의 제삿날인 3월 21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김시범 등은 3월 21일 오전 10시 무렵 조천시장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후 신좌면 시위는 3월 22~24일까지 지속되었다. 시위대는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3월 23일 시위대는 일제 군경을 향해서 투석전을 전개하면서 저항하였으나,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일제 군경의 무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3월 24일 조천시장의 장날을 맞이하여 1,500여 명의 시위대는 김년배(金年培) 등의 주도 아래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제주도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던 당시, 제주도 일대 훈장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의 의미와 국권회복의 길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 유림의 지도자와 관리들이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은사금 등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신좌면 조천리 서당 훈장 신계선(愼啓善), 낙천리(樂天里) 서당 훈장 김여석(金汝錫), 저지리(楮旨里) 서당 훈장 박세현(朴世賢)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신계선 등과 함께 항일을 위해서 고사(告祀)라는 제천의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후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서 제주도민 전체가 궐기해야 한다는 격문을 작성하여 제주도 일대에 붙이다가 일제 군경에게 연행되었다. 1919년 10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6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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