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漢翼
丁漢翼1890. 6. 15 ~ 1977. 3.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원군 남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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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6월 15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사매면(巳梅面) 오촌리(梧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남원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남원면의 만세시위는 4월 3일 덕과면장(德果面長) 이석기(李奭器)가 식수기념일(植樹紀念日)을 명목으로 면민을 동원하여 거행된 만세시위에서 기인하였다. 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이석기·조동선(趙東先) 등은 오신헌병주재소(梧新憲兵駐在所)에 연행되었다가, 남원면 장날인 4월 4일 남원헌병분대로 압송되었다. 그러자 같은 날 일족인 이석기를 구출하기 위해 이형기(李炯器)·이성기(李成器) 등이 태극 깃발 1개를 가지고 남원면 읍내 시장으로 와서, 오후 1시경 시장 상인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오후 2시경 남원 읍내와 광한루(廣寒樓) 광장에 모인 약 1,000명과 함께 방극용(房極鏞)·형갑수(邢甲洙)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장날 만세시위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일제 헌병과 일본군 수비대 등을 배치한 후,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시위대와 함께 남원헌병분대로 이동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일제 군경 등이 해산을 요구하였지만, 해산에 응하지 않고 항거하였다. 그러자 일제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방극용·방진형(房鎭炯)·방명숙(房明淑) 등 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거나 붙잡혔다. 이때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아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실신하였다. 이후 가까스로 회복하였으나, 평생 후유증으로 고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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