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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金九鉉

1900. 5.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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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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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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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00년 5월 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서부리(西部里, 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범주(範疇), 이명은 김수특(金壽特)이다.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 최초의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는 면장과 면서기들이 주도하여 예안면에서 일어났다. 예안면에 사는 김동택(金東澤)·신응한(申應漢)·이동봉(李東鳳)·이용호(李用鎬) 등은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가 서울의 만세시위를 목도하였다. 그들이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예안면의 시위 준비가 시작되었다. 3월 11일 밤 예안면장이었던 신상면(申相冕)의 주도 아래 백남학(白南鶴)·신동희(申東熙)·신응두(申應斗)·이광호(李洸鎬)·이남호(李南鎬)·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이호명(李鎬明) 등이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여 만세 시위를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신상면은 3월 12일이 장날이기는 하나, 바로 거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다음 장날인 3월 17일에 거사할 것을 제안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군중 동원을 준비하는 동시에 독립선언서는 면사무소 등사판을 가져다가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등사하고 태극기도 만들었다. 예안면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趙修仁)도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는 김진휘(金鎭暉)·이원영(李源永)·조맹호(趙孟鎬)·조방인(趙邦仁) 등과 의논하여 3월 17일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예안교회(禮安敎會)에서도 3월 17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고종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독립선언서를 갖고 온 신응한과 장로 민태규(閔泰圭)와 기독교면려청년회(基督敎勉勵靑年會) 간부 신세균(申世均) 등이 중심이 되어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7일 예안면의 시위는 오후 3시 30분 수십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 일본인들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넘어뜨리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 만세 소리와 함께 시장 주변의 세 곳에 흩어져 있던 시위대가 일제히 시장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예안주재소를 몰려가자 경찰과 군인이 나서 시위에 앞장서던 15명을 체포하였다. 오후 6시경 시위대는 주재소 앞에서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1,500여 명이 넘는 시위 군중은 주재소를 둘러싸고 돌과 기왓장을 던졌다. 경찰과 군인의 진압 과정에서 25명이 다시 체포되었다.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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