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錫權
趙錫權1865. 9. 2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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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65년 9월 27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평산면(坪山面) 광천리(廣川里)에서 태어났다. 집안내력 및 성장과정은 알려진 바가 없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종교는 천도교이다. 1919년 3월 10일 북청군 노덕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해서 평양·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북청군에는 3월 1일 원산을 비롯해서 함흥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청 천도교구에서는 교구장 김태종(金泰鍾)을 증심으로 한 천도교 인사들이 3월 11일 장날을 맞이하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3월 8일 천도교도인 한병표(韓炳豹)는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및 만세시위 소식을 김태종에게 전달하였다. 김태종은 이승국(李承國)에게 독립선언서를 쓰도록 했으며, 정기수(鄭基洙)의 집에서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가 적힌 깃발을 만들도록 하였다. 3월 8일 오전 8시 북청군 노덕면에서는 천도교 인사들과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250여 명이 결집한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어서 시위대는 징과 북을 치면서 영덕산(靈德山)으로 올라갔다. 그날 시위는 일제 군경에 진압되었다. 3월 10일 정오에 같은 천도교인인 이욱성(李郁性)·이기주(李基柱)·조석하(趙錫河) 등과 함께 노덕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지만, 일제 군경에 의해서 해산되었다. 한편 그날 일제 군경은 북청 천도교구에서 3월 11일 대규모 만세시위를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포착하고, 그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태종·이승국(李承國)·이덕수(李德洙) 등을 예비 검속하였다. 나아가 노덕면 남문, 북문, 서문을 차단함으로써 외부 출입을 통제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3월 11일 노덕면에서는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3월 10일 노덕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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