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龍奎
趙奎1880. 12. 24 ~ 1944. 1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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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12월 24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咸安面) 북촌동(北村洞)에서 태어났다. 호(號)는 학산(學山)이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함안 읍내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서울 만세시위 소식을 알리면서 계획되었다. 거사일은 함안 읍내 장날인 3월 19일로 결정하였다. 태극기 제작, 독립선언서 복사,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망 구축 등 사전 준비를 하였으며, 군중 동원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였다. 거사일인 3월 19일 비봉산(飛鳳山) 고천제(告天祭)에 참석한 후, 태평루(太平樓) 독립선언식을 신호로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해 주도하였다. 장날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짧은 시간에 3,000여 명으로 늘어난, 함안 경찰관 주재소·함안 군청·우체국·법원출장소 등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적 기관들을 향해 나아갔다. 특히 이종찬(李鍾瓚)·안혁중(安赫中)·백낙삼(白樂三) 등과 함께 함안경찰관주재소로 들어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곤봉·몽둥이 등으로 기물을 부수었으며, 돌과 기와 조각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또한 마산(馬山)에서 출장으로 함안주재소에 와 있던 마산경찰서장과 주재소 순사부장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시위대의 규모가 급격히 불어나고, 시위 양상도 군청·주재소 등에 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하기까지 이르자,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여 진압에 참여하였다. 결국 마산 중포병대대가 도착하여 일제 경찰과 함께 폭력적 진압에 나서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도자 중 한 사람으로 잡혔다. 같은 해 5월 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강대한·안재원(安在遠)·백낙삼·이규석(李圭錫)과 함께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 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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