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會植
趙會植1870. 3. 27 ~ 1943. 5.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정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0년 3월 2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장정리(長井里, 현 당진군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구장으로부터 면 내의 도로 보수 공사를 위해 면사무소 앞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4월 4일 아침 개인 연장을 지참하고 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면사무소 앞에 모인 600여 명의 주민들에게 면장 이인정은 “지금부터 천의장터로 가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이니 참여하라”고 연설하였다. 도로보수공사가 아니라 만세시위에 참여하라는 면장의 연설을 듣고 잠시 놀랐으나, 곧바로 그 취지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열을 편성하고, 주도자들의 선창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약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이 천의장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의 모습을 보고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속속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천의장터에 나온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송재만 등 주도자들의 지휘에 따라 천의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천의주재소의 순사들을 무력화시키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다음날인 4월 5일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 헌병수비대의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형(笞刑)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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