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啓洛
崔啓洛1893. 6. 20 ~ 1927.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명천군 하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93년 6월 20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가면(下加面) 성구동(聖邱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하가면 화태동(花台洞) 화태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북에서는 주로 천도교도와 기독교인 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 소식이 전파되었다. 명천군에서는 3월 12일 하우면(下雩面)에서 만세시위 시도가 있은 후, 3월 15일 하가면 화태시장의 만세시위를 기점으로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15일 아침부터 인근 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오전 11시경 화태시장에는 2,000여 명의 시위대가 운집하였다. 이때 현용묵(玄龍黙)·최경남(崔鏡南)·박승룡(朴承龍)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친 후 시위를 시작하였다. 오후 1시 경에는 현용묵·허을(許鳦)·허영준(許英俊)·김성련(金成鍊) 등의 주도로 1,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하가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현용묵 등과 함께 면장 동필한(董弼漢)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하지만 동필한이 이를 비난하면서 거부하였다. 이에 현기율(玄機律)·박승룡·김익련·김재한(金在漢) 등과 함께 면장을 구타하였다. 그러자 화태헌병분견소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 등이 동필한을 구출하여 분견소로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이에 격노한 시위대와 함께 일제 헌병 등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항하였고, 분견소장 등은 결국 면장을 김동영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허현을 비롯한 시위대와 함께 김동영의 집으로 가서 동필한을 내놓으라고 소리쳤고, 다시 헌병분견소로 이동하여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5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밤이 되자 시위대는 면사무소와 면장 사택에 방화하였다. 화태시장의 만세시위가 계속되자 일제 헌병은 길주헌병분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오후 10시경 헌병군조가 15명의 기병을 이끌고 화태시장에 도착한 후 시위대를 향하여 총칼을 휘두르며 만세시위 주도자를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결국 40여 명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정의 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그해 11월 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