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燉玉
崔燉玉1897. 5. 23 ~ 1968. 10.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강릉군 강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7년 5월 23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강릉면(江陵面) 초당리(草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 장례식에 참례하기 위하여 상경했을 때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러한 소식을 마을에 전하였다.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강릉에서도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4월 2일 감리교회(監理敎會) 목사 안경록(安慶祿)이 주축이 되어 교인들을 규합하여 강릉 읍내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 일원으로 참여한 강릉청년회가 감리교회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4월 2일 강릉 읍내 만세운동이 강릉군 주민들의 큰 동참 없이 이루어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강릉청년회 소속 청년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거사를 계획하였다. 김진숙(金振淑)·최선근(崔善根)·최선호(崔善浩)·최선재(崔善在)·정재화(鄭載和)·조대현(曹大鉉) 등과 함께 다음 장이 서는 4월 7일을 거사일로 정한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윤식(李允植)의 상점에 모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비밀리에 만나 태극기 500여 기를 만들고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는 등 분주히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만세시위가 있기 하루 전 이윤석 상점을 일제 경찰이 급습하면서 주도자들과 함께 만들었던 태극기도 모두 몰수당하고 말았다. 거사 당일 아침, 주도자들과 함께 아침 일찍 강릉 읍내 장터에 있는 이윤석의 상점으로 향하였다. 태극기를 가져오기 위해 들렸던 이윤석의 상점에서 일제 경찰의 급습 사실을 알고 주도자들과 함께 급히 최선근의 상점으로 가서 대책을 논의하였다.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한 주도자들과 함께 창호지와 곶감꽂이로 급히 태극기 100여 기를 만들었다. 오후 12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 중앙으로 나와 군중에게 태극기를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청년들의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군중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많은 사람들의 동참에 사기가 오른 주도자들과 함께 수백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인근에 있는 경찰서로 향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서로 향하는 시위대 앞에 이미 중대 규모의 일제 군경이 주둔해 있자 주도자들과 함께 이를 뚫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두 편으로 나뉘어 시위대를 이끌고 흩어졌다. 오후 3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각각 화부산(花浮山)과 남산(南山)으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마주하고 있는 두 산에서 울려 퍼지는 만세소리에 강릉 읍내는 거의 하루 종일 만세소리로 가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만세시위는 밤까지 이어졌으며 일제 경찰은 곧 주도자와 참여자들을 잡아가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후 같은 해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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