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相根
崔相根1891. 4. 28 ~ 1943. 11.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용인군 원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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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4월 28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사암리(沙岩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1일 용인군 원삼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용인군에서는 3월 24일부터 본격적으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3월 24일 용인군 수여면(水餘面) 김량장리(金良場里)에 위치한 김량장공립보통학교 학생 30여 명이 김량장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8일 모현면(慕賢面)·포곡면(蒲谷面)·내사면(內四面)·수여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서는 시위대가 모현면·포곡면·내사면을 거쳐서 수여면의 김량장시장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3월 30일에는 기흥면(器興面)·수지면(水枝面)에서 만세시위가 있었고, 3월 31일에는 남사면(南四面)·외사면(外四面)·이동면(二東面) 등으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황경준(黃敬俊)·안명옥(安明玉)·김은수(金殷秀) 등과 함께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도한 조선독립선언의 취지에 크게 찬동하고, 원삼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3월 31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하였고, 안명옥과 함께 김은수를 찾아가서 만세시위 참여를 제안하여 동지로 규합하였다. 3월 31일 새벽 3시경 원삼면 좌항리(佐恒里)와 사암리 주민 300여 명과 함께 고당리(高塘里)에 위치한 원삼면사무소로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와 더불어 원삼면사무에 도착하자, 맹리(孟里)에 거주하는 이은표(李殷杓)·이인하(李寅夏)가 미리 제작한 구한국기를 나누어주었다. 오전 6시경까지 시위대와 함께 만세시위를 이어가자 출동한 일제 헌병이 저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헌병보조원의 총기를 빼앗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투석을 하는 등 저항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되었다. 이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은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표현이기에 무죄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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