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生用
崔生用1886. 11. 7 ~ 1969. 2.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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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6년 11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현 당진시 정미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만세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별로 연락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로 보내면서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일찍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면장 이인정은 면내 각 마을에서 집결한 약 600여 명의 주민들을 향해 모두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만세시위에 나서자는 내용으로 연설하였다. 이에 즉시 다른 주민들과 함께호응하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대형 태극기를 선두에 세운 시위대에 합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시위대와 함께 이인정·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천의장터의 한복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규모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천의장터로 파견된 당진경찰서의 순사들이 천의주재소 일제 경찰과 합세한 후,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위대와 더불어 주재소로 달려가서 일제 경찰을 구타하고, 돌을 던져 주재소 등을 파괴한 후 귀가하였다. 이 일로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혔고, 1919년 4월 23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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