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錫龜
崔錫龜1864. 11. 24 ~ 1922. 2.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수안군 수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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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4년 11월 24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용우리(龍牛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일 수안군 수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독립선언서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유포되고 있음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이에 황해도 경무부장은 수안 헌병분대에 수안천도교구실 수색을 지시하는 전보를 보내었고, 3월 2일 오후 일제 헌병대는 수안천도교구실을 급습하여 독립선언서를 압수하고 안봉하(安鳳河)를 비롯한 천도교구 인사들을 붙잡았다. 이때 일제 헌병의 연행을 피한 이영철(李永喆)·홍석정(洪錫楨)·한청일(韓淸一)은 3월 3일 수안읍 만세시위를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영철 등은 수안군의 천도교인들에게 수안읍 만세시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3일 새벽 6시 수안면 천도교구실 앞에 군중과 함께 모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와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수안 헌병분대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하면서 헌병과 대치하였다. 11시 무렵에는 이동욱 등이 이끄는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대의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함으로써 시위대 일원 중에서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3월 3일 오후 1시 무렵 홍석정·한청일·오관옥은 15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수안 헌병분대로 갔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함께 외치면서 헌병분대 정문에 설치된 새끼줄을 돌파하고 경내에 진입하였다. 경내에 진입한 이후, 김희덕·이치제·오병선·양석두는 헌병분대의 퇴거를 강경하게 요구하면서 ‘조선독립’을 외쳤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일제 관헌은 수안군에 병력을 증파함과 동시에 수안읍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를 색출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수안읍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내란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법원으로 지정하여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이 ‘본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을 선언함에 따라 실제 재판은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서 소요죄로 1년 3월(미결구류일수 중 45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1922년 2월 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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