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宗河
崔宗河1887. 1. 24 ~ 1922. 7.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7년 1월 24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정곡면(井谷面) 상안흥리(上安興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이며 대교구장(大敎區長)을 지냈다. 1919년 3월 27일과 4월 1일 횡성군 횡성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횡성군은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대교구가 소재한 것으로 천도교인들의 영향력이 큰 지역 중 하나였다. 당시 대교구장으로, 이웃 마을 영영포리(永永浦里)에 사는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과 뜻을 모아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1919년 3월 10일 저녁 같은 마을에 사는 천도교인 장도훈(張道勳)과 함께 신재근의 집을 방문하였다. 세 사람은 확산하고 있는 만세운동을 횡성군에서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신재근이 마련한 3원으로 장도훈으로 하여금 서울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입수하도록 하였다. 3월 12일 저녁 장도훈이 대형 태극기 1장과 작은 태극기 20장, 독립선언서 40장을 가지고 돌아오자, 신재근의 집에서 다시 모였다. 동료들과 함께 3월 27일 횡성읍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독립선언서는 횡성군 각 지역에 배포하기로 하였다. 다음날인 13일 같은 마을의 서당교사 김인경(金麟卿)을 만나 독립선언서 12장을 주면서 정곡면과 갑천면(甲川面)·둔내면(屯內面)에 선언서를 배포할 것을 부탁하는 등 만세운동 준비와 선언서 배포를 동시에 수행하였다. 3월 27일 아침 신재근·김인경 등 천도교들과 함께 횡성읍 장터로 향하였다. 11시경 장터에 도착하여 주도자들과 상점을 방문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며 철시를 독려하였으며, 장꾼과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만세운동 동참을 권유하였다. 12시경 윤태환(尹泰煥)이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며 장터 중앙으로 걸어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과 함께 윤태환의 선창에 독립만세로 화답하였고, 장터에 모인 군중도 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이때 갑자기 일제 기마병이 출동하여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장날에 철시하는 상점을 보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제 관헌이 제보하면서 일제 경찰이 출동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신재근·안승훈(安承勳) 등 12명이 붙잡혔다. 3월 27일 다시 한번 천도교인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시위 계획이 알려지면서 횡성읍 청년회가 가담하였고, 감리교회 지도자 정해경(鄭海璟)과 탁영재(卓英才)도 합류하였다. 이로 인해 만세운동이 횡성군 전체로 확대되었으며, 대규모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4월 1일 횡성읍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청년회와 감리교인들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는 한편, 횡성군과 인접한 원주군(原州郡)·영월군(寧越郡)·인제군(麟蹄郡)의 천도교인들도 규합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등 조직적으로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이 되자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횡성읍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 길목에는 미리 천도교 청년들을 배치하여 장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장터에 도착한 주도자들과 함께 상점 철시를 권고하며 상인들의 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오후 5시경 정해경이 군중 앞으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시각 천도교구실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었으며, 이어서 조상렬(趙常烈)·김순서(金順瑞)·전성수(全聖洙) 등 천도교인들이 군중을 이끌고 장터를 행진하였다. 밤이 되자 헌병분견소로 이동하였다. 헌병분견소에는 일제 군경이 만세시위에 대비하여 무장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분견소로 진입을 시도하자 일제 군경은 가차 없이 총탄을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의 총탄을 맞아 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제의 시위대 진압과정에서 정해경·조상렬·김성서(金聖西) 등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6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달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