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敦錫
韓敦錫1896. 11. 2 ~ 1935.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둔남면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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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11월 2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삼계면(三溪面) 환은리(渙隱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고종의 장례식과 만세운동을 지켜보고 돌아온 이기송(李起松)은 고향에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23일 오후 2시 오수리 장날을 기하여 이기송은 군중 앞에서 독립을 고취하는 연설을 한 다음, 오병용(吳秉鎔)·이회열(李會烈)·심상룡(沈尙龍)·이기우(李起偶)·이윤의(李倫儀)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의 숫자는 약 2천 명이 넘었는데, 이춘만(李春萬)·이정의(李正儀)·진만조(陣萬祚)·이송의(李松儀) 등 오수장터에 모인 여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오수장터를 행진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 주도자인 이기송이 오수주재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오수주재소에 몰려가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또한 이회열·오병용·이병렬(李秉烈) 등과 함께 오수주재소 내부로 진입하여 기물을 파손하고 일제 경찰을 제압하여 총기를 빼앗고 이기송을 구출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둔남면사무소로 이동하여 둔남면장 이창의(李昌儀)와 면서기(面書記) 임상학(林相學)에게 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하였으며, 둔남면 일대 일본인 상점과 가옥을 파괴하였다. 이날 오후 4시경 남원헌병분대의 일제 헌병들과 임실경찰서 무장 경찰들이 오수장터로 출동하여 무차별 사격으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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