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海晏
鄭海晏1923. 8. 5 ~ 2008. 2.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시장친우계
- · 진악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3년 8월 5일 전라북도(현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금산읍 중도리(中島里)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하동해안(河東海晏)이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1936년 3월 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형 정해윤(鄭海潤)이 경영하는 해산물상에서 근무하였다. 1940년 5월 11일 청년 7명과 함께 시장친우계(市場親友稧)를 조직한 후, 같은 해 7월 진악동우회(進樂同友會)로 단체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한인 지원병 강제모집에 반대하여 신체검사를 받은 당사자가 스스로 불합격을 자초하도록 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매달 15일마다 모여 추진 상황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독립군과의 접선을 통해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동지인 최병무(崔秉茂)를 중국으로 파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회원마다 40원씩 납부하여 총 200원의 여비를 마련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동창생인 문대식(文大植) 등과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금산읍 후지모토(藤本順一)의 문방구 점원으로 근무하던 문대식은 그해 4월 중순경 상점의 창고에서 1909년 1월 일본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大阪每日新聞社)에서 발행한 세계지도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지도를 상세히 열람하던 문대식은 한국이 일본과는 별개의 독립국으로 표시되어 있고 태극기도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문대식은 6월 20일 후지모토의 인삼밭을 관리하던 금광학선(金光鶴善)에게 ‘후지모토의 창고에서 발견한 지도에는 조선을 한국이라는 독립국으로 표시하고, 또 그 국기도 일본의 국기와 구별하여 표기되어 있었으니, 조선은 당연히 그 당시와 함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독립의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금산군 남이면(南二面) 성곡리(星谷里)에 위치한 진악산(進樂山)의 암벽에 구한국국기를 그려 놓으면 이를 보고 사람들이 독립국이었던 한국을 추억하여 독립운동을 하려는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에 대한 실행에 대해 협의하였다. 같은 해 7월 20일 후지모토 상점에서 문대식으로부터 위와 같은 내용을 듣고 실행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9월 16일 다시 자택에서 박승묵(朴勝默)·엄창수(嚴昌樹) 등과 함께 모여 문대식으로부터 ‘많은 등산객이 찾아오는 진악산 암벽에 구한국국기를 그리고 또 동굴 앞에 ‘조선독립만세’라고 기록한 팻말을 세워두면 독립운동을 할 생각을 품게 될 것이므로 민족의식을 주입하기 위해 내일 이를 실행하자’라는 제안을 받고 승낙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17일 진악산의 동굴 암석에 페인트로 대형태극기를 그린 후 그 아래에 ‘조선’이라고 쓰고, 동굴 앞에는 ‘조선독립만세’라는 글자와 태극기 모양을 조각한 팻말을 세워 놓았다. 1941년 3월 25일에는 임해준(任海俊)·문대식 등과 모여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우선 군인으로서 무기의 사용과 군대의 지휘 방법 등을 익혀야 하므로, 일본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하거나 만주국으로 가서 일본군 군속이 되자는 논의를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1942년 2월 1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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