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喜鍾
鄭喜鍾1872. 10. 22 ~ 1943. 4.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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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72년 10월 22일 서울 종로(鐘路)에서 태어났다. 흥인배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9년 11월 하순경 서울 창신동에서 대동단(大同團)((朝鮮民族大同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여 제2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미국 북감리파(北監理派)의 예수교 신자로 미국의 선교회가 경영하고 김종우(金種宇)가 교장으로 있던 사립 흥인배재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대동단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끝이지 않자, 최익환(崔益煥)·전협(全協) 등이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규합한 것이었다. 특히 경성 봉익동(鳳翼洞) 전협(全協)의 집에서 ‘조선을 제국의 통치 하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국을 만들 것’, ‘세계는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할 것’이라는 3대 강령을 제창하고, 대동단을 칭하여 단원과 자금을 조비하고 비밀 출판물을 반포하여 사상을 고취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11월 27일 오후 5시를 기하여 광화문(光化門) 앞 광장에서 제2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때 제2차 만세운동을 위한 선언서 인쇄 및 중간 전달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11월 25일 밤 면식이 있던 이화학당 부속 용두리여학교 교원인 안교일(安敎一)이 ‘27일 일이 있을 것 같으니 26일 밤에 배포시키라’고 하여 선언서를 집에 보관하였다. 또한 안교일이 같은 날 오후 2시경 흥인학교에서 쓰는 등사판을 가지고 와서, 연필로 문안 쓴 것을 인쇄해 달라고 하여 약 40장 정도를 인쇄하였다. 그리고 그 원지 10장 정도와 함께 문안을 지참하고 11월 26일 오후 8시 반경 교회에서 알게 된 전대진(全大振)을 찾아가, 지참한 문서를 27일 종로 5가의 주교(舟橋)부터 동대문(東大門)까지 민가에 배포하라고 말하고 전부 건넸다. 등사한 선언서는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외 32명 명의로 등사한 것이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 사기죄 등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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