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順伊
朱順伊1900. 6. 17 ~ 1975.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김기정징토시민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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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900년 6월 17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산양면(山陽面) 풍화리(豐華里)에서 태어났다. 통영군 통영면(統營面) 정양리(貞梁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주선이(朱善伊·朱先伊)이다. 음식점 영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친일 도평의원 김기정(金淇正)을 규탄한 김기정징토시민대회에서 구금된 이들의 석방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1927년 경남 도평의원 김기정이 도평의회 석상에서 한인의 보통교육을 인정하지 않고 조선어 통역 철폐를 주장한 사실이 통영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김원석(金元錫)·박중한(朴仲漢)·박봉삼(朴奉衫)·박태근(朴泰根) 등이 1927년 3월 김기정의 매국발언을 징토한다는 내용의 성토문 500장을 인쇄하여 통영 읍내에 반포하였다. 또 각지에 사람을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도록 하여, 같은 해 3월 25일 대화정(大和町) 봉래좌(蓬萊座)에서 조사보고회를 열고 시민대회를 개최하였다. 김원석 등은 김기정의 공직사퇴요구를 포함한 5가지 항목의 결의문을 작성하여 그 가운데 1부를 김기정에게 보냈다. 그러나 김기정이 명예훼손과 협박죄로 고소하면서, 통영 청년 12인이 통영 검사국에 체포되었다. 청년들은 단식동맹을 단행하며 일제의 조치에 항거하였다. 가족들과 통영 민중들은 통영 경찰서 앞에서 석방과 면회를 요구하였고, 김기정의 집에 찾아가 고소취하와 함께 김기정의 행동을 비판하였다. 1927년 5월 13일 단식을 단행하던 이들 가운데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분노한 가족 및 지역 주민들과 함께 통영 경찰서와 김기정 집 앞으로 모여들어 일제히 구금된 이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김기정의 집에 찾아가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김기정의 집에 있던 친족 김기흔(金淇炘)을 구타하였다. 이때 시위에 참여한 33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후 21명의 동료들과 함께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검사분국으로 이송되었다. 1927년 12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15일 강명순(姜明順)·문복만(文福萬)·양재성(梁在成) 등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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