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載五
蔡載五1908. 8. 24 ~ 1980. 2.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제주도해녀어업조합
- ·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제주 해녀투쟁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08년 8월 24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종달리(終達里)에서 태어났다. 1931년 5월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 제주로 돌아온 강창보(姜昌輔)의 주도에 의해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가 재결성되자, 이에 가입하였다.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는 기존 도내 청년단체를 해소하고 청년운동·농민운동·여성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자 사회주의운동자들이 결성한 항일비밀결사로서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목표로 하였다. 같은 해 11월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의 구좌면 책임자 신재홍(申才弘)과 동지 한원택(韓遠澤)·고사만(高仕萬)·한향택(韓香澤)과 더불어 종달리 김기생(金己生)의 집에서 농민조합 설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참석한 농민 수십여 명에게 ‘농민의 피를 짜는 악질조합 반대, 종묘(種苗) 강제배포 반대, 무상부역(無償負役) 반대, 농민대중의 이익에 배치되는 면(面)행정 반대’ 등의 표어를 발표하였다. 이후 수차례의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조합 내에 종달리문고를 설치하고 『제2무산자신문』을 비치하는 등 농민들의 권익 보호와 항일의식 고취에 힘썼다. 한편 당시 제주 해녀들은 해녀어업조합의 어용화와 해산물 매수 가격을 둘러싼 부정으로 인적 물적 수탈을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제주도 야체이카는 해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들을 지원하였다. 마침내 1932년 1월 세화(細花)장터에서 해녀조합에 대한 지정판매제 반대 등 8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해녀 1,000여 명이 참여한 생존권 투쟁운동이 일어나, 세화주재소까지 몰려와 시위하는 등 항일운동의 기세가 대단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이 사건의 주도자 및 배후조정 혐의로 전 제주도에 걸쳐 해녀와 청년운동가 100여 명을 검속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서 5월 14일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이송되어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3년 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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