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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金莖

崔金莖

1908. 1. 25 ~ 1957.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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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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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南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남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1931년 반제격문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08년 1월 25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삼동면(三東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봉식(崔鳳植)·최량(崔良)이다.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재학 시절 일본의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깨닫고, 새로운 사회 건설에 뜻을 두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1930년 7월 일본의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민족운동단체였던 이 학우회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국내순회 학술강연단을 조직하고 순회강연을 실시하였는데, 강연의 내용이 배일사상과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것이었기에 일제에 의해 강연이 중단, 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우회의 5개 순회강연반 가운데 중앙반 연사로서 전국 순회강연을 하였다. 1931년 3월부터는 서울에 체류하였는데 당시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현(長春縣) 만보산(萬寶山) 지역에서 한인(韓人) 농민과 중국 농민 사이에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이후, 국내에서도 한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에 같은 해 7월 서울에서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中央基督敎靑年會學校) 학생인 김만유(金萬有)·홍병모(洪炳模) 등과 함께 대중 선동 단체로 ‘학생제네스트’라는 동맹협의회를 기획하였다. 제네스트는 제너럴 스트라이크(General Strike)의 약어로 일제히 일어나는 대규모 동맹 파업을 의미한다. 그리고 활동 방안으로 격문을 배포하여 학생제네스트를 감행하고자 하였다. 이후 1931년 7월 6일 동지들과 함께 김병선(金炳璇)의 하숙집에서 만보산사건이 조선총독부의 실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는 격문 약 2,000장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이틀 후 밤 10시경부터 휘문고보·여자고보는 이동재(李銅材), 동덕여고보·청년회학관은 홍병모, 고등예비실업전수는 김만유 등이 격문을 배포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유영경은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게 하는 등 서울 전역의 학교에 배포하여 동맹휴교를 일으키려 하였다. 이 격문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제의 부당한 침략과 횡포를 낱낱이 알리고, 고통을 받는 우리 민족의 실상을 드러내어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투쟁할 것을 선전·선동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16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후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32년 7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3년 7월 16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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