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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基貞

崔基貞

1924. 3. 30 ~ 198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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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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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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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로 흥산기정(興山基貞)이라는 창씨명을 썼다. 1944년 징용·징병 거부 투쟁을 전개하였다. 자인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청년훈련소에 동원되는 등 일제의 강제 징집이 예견되자 1944년 7월 경산군 남산면 일대의 청년 등 29명과 함께 일제 강제동원에 저항하기 위해 대왕산(大旺山)에 숨어들어 항일투쟁을 하였다. 7월 중 세 차례에 걸쳐 항일투쟁을 논의한 이들은 제3차 회의에서 경사가 가파르고 옛 성터가 잔존한 대왕산을 최적지로 선정하였다. 7월 26일 입산을 시작하여 요새를 구축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먼저 이들은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조직의 이름을 결심대(決心隊)라 정하고, 3개 소대와 헌병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였다. 대장은 안창률(安昌律)이 맡았으며, 이때 일반소대에 배속되었다. 당시 신축 중이던 주재소 파괴를 1차 목표로 삼고 세부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었다. 마을에 있는 가족들을 통해 회유하는 한편, 총을 쏘며 위협하는 일제 경찰에 대해 죽창과 투석으로 맞서 싸웠다. 8월 4일 인근에 위치한 용산(龍山)으로 근거지를 옮긴 결심대원들과 함께 계속해서 저항을 이어가던 중, 8월 10일 식량 확보를 위해 산을 내려왔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0월 4일 이른바 보안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 3월 3일 병보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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