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七來
鄭七來1888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 · 중앙총회
- · 삭도(새크라멘토)지방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6)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4년 11월 24일 갤릭(Gaelic)호를 타고 하와이(Hawaii) 호놀룰루로 노동이민을 떠났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하와이지방총회 시찰원이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0월 북미지방총회 회장 황사용(黃思溶)과 하와이 각 섬들을 순방하며 한인들을 위무하고, 대한인국민회 중심으로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해 주도록 부탁하였다. 1911년 하와이지방총회 회장이 되어 부회장 김종학(金鍾學), 서기 홍인표(洪仁杓), 회계 박인걸(朴仁傑) 등과 기념일 행사 등을 주관하며 독립운동 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1911년 2월 북미지방총회와 협력하여 멕시코에서 노동하고 있던 한인들을 하와이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일체의 사무는 하와이지방총회에서 맡기로 하고, 북미지방총회는 이민 작업에 필요한 경비 모집을 담당하였다. 4년간의 노예와 같은 노동계약을 마친 멕시코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자, 하와이지방총회가 경주동맹회와 교섭하여 멕시코 한인들을 노동자로 수용키로 합의하였다. 미 연방정부에도 한 번에 100명씩 하와이로 이주시키겠다고 청원하였다. 이민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비용은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있는 한인들이 ‘후원고본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고, 멕시코 한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 상환키로 하였다. 하지만 9월 11일 멕시코 한인 이근영·김동현·이명수·이병은 4인이 미국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항(桑港· San Francisco)으로 입국하려 하였고, 연방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멕시코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 추진은 구제 차원에서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수적으로 적은 한인들의 모든 역량을 독립운동에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1912년에도 하와이지방총회 회장으로 지방총회 및 지방회를 운영하였다. 1913년 중앙총회 대의원회에서 총무로 선정되자 대한인국민회 전체 재정과 한인사회 유지 그리고 독립운동 자금을 확충하고자 정성을 기울였다. 1914년에는 수학(修學)을 목적으로 하와이 마노아벨리에 있는 태평양학원에 입학하였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는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박용만의 권력투쟁, 1920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와 이승만의 구미위원부의 애국금 논쟁으로 한인사회가 분쟁을 거듭하자, 환멸을 느껴 활동을 자제하였다. 1922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삭도(朔都· Sacramento) 지방회 대의원으로 북미지방총회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여, 한인사회의 유지와 독립운동 방략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삭도지방회에서 운영하는 국어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인 2세대들에게 구국교육을 실시하였다. 1923년 삭도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대한인국민회 창립, 3·1운동, 국치 및 선국선열 기념식 등을 주관하며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다. 1923년부터 1924년까지 국내에서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전개되자, 6월 5일부터 북미민립대학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에도 같은 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재무 및 구제원, 1928년에는 총무로 선출되어 지방회의 건전한 재정 운영과 한인들의 독립운동 자금 제공을 독려하고 이를 수합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921년 4월 7일부터 1945년 5월 10일까지 국민의무금 명목으로 총 5차례에 걸쳐 45원, 1921년 3월 10일에는 간도 지역 한인 구제금으로 10원, 1924년 3월 13일과 7월 17일에 조선민립대학 설립 후원금으로 총 6원, 1925년 8월 20일에 서재필의 독립외교청원 활동 지원금으로 1원, 1928년 3월 8일에는 3·1운동 기념금으로 1원, 1942년 1월 15일부터 1945년 5월 10일까지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인 『신한민보』 후원금으로 총 3차례에 걸쳐 20원, 1943년 3월 4일부터 1945년 5월 1일까지 독립금 명목으로 총2회에 걸쳐 130원 등을 제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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