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문
姜永文1881. 2. 20 ~ 1931. 4.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인의병
- · 독립의군부
- · 대한광복군정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1년 2월 20일 전라북도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 왕림리(旺林里, 현 전북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서 강종회(姜鍾會, 1990년 애족장 추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字)는 익문(益文)이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제자인 부친 강종회는 무과 급제 후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체결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고, 동생 강현봉(姜鉉奉)은 장릉참봉(莊陵參奉)을 지냈다. 1906년 6월 4일 최익현은 전북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를 열고 거의를 촉구하였다. 이튿날 이 소식을 듣고 부친과 고용진(高龍鎭)이 이끄는 포수 30여 명과 함께 집결지로 향하였다. 6월 6일 정읍(井邑) 내장사(內藏寺)에 당도하였다. 부친 강종회는 포사(砲士)로 지칭될 정도로 총포를 잘 다루었기 때문에 화포장(火砲將)에 임명되었다. 이때 부친을 도와 포군으로 함께 활동하였다. 집결지에서 의병부대 조직을 마친 후 순창(淳昌) 구암사(龜岩寺)를 거쳐 순창읍에 이르렀다. 이때 순창군수 이건용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의병을 공격하였다. 최익현은 관군임을 알고 동포끼리 서로 죽일 수는 없으니 물러가라는 글을 전달하고 의병의 해산을 명하였다. 정시해(鄭時海)는 최익현을 지키려다 전사하였고, 임병찬을 비롯한 12명이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면서 태인의병은 해산되었다. 이후 부친이 기삼연(奇參衍) 등의 의병부대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최익현과 함께 대마도에 유폐되었다가 돌아온 임병찬은 1912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결성하였다. 태인의병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전국적으로 각 도·군·면에 순무장(巡撫長)·군수(郡守)·향장(鄕長)을 두는 등 조직을 체계적으로 구성하였다. 이때 가담하여 1914년 2월 독립의군부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2월 15일 임병찬이 체포되면서 독립의군부는 해산되었다. 1920년 7월 복벽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군정사(大韓光復軍政司)의 전라도 부재무부장(副財務部長)에 고창 출신 의병으로 독립의군부 참모관을 지낸 최익렬(崔翼烈) 등과 함께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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