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학
鄭淳學1882. 6. 4 ~ 1956. 11.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쌍산의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82년 6월 4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利陽面) 쌍봉리(雙峯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사열(士悅)이다. 이규식(李圭植)의 딸인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혼인하였다. 1906년 화순군 도림면(道林面) 증동리(甑洞里) 쌍산(雙山)에서 양회일(梁會一)이 조직한 의병부대에 동참해 활동하였다. 양회일의 친동생으로 화순 지역에서 학문적 명성이 높았던 동계(東溪) 양회락(梁會洛)에게 수학하였다. 『행사실기(杏史實記)』의 창의록(倡義錄)에 따르면 절개와 의리를 숭상하는 기질이 강하였다고 한다. 쌍산에서 의병부대가 조직되자 양회일을 방문하고 동참하였다. 1906년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태인(泰仁)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된 후 유배지인 쓰시마섬(對馬島)에서 별세하였다. 이에 자극받아 호남 지역에서는 1906년 말부터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양회일도 화순의 쌍산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양회일은 1906년 10월 문중을 중심으로 인근의 인재와 산포수 등을 모아 전문적인 전투 부대로 조직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의병 활동에 앞서 무기를 제작하고, 군사 훈련을 통해 전력을 강화하였다. 이때 의병부대를 직접 찾아가 참여의 뜻을 밝히자, 양회일이 의사(義士)로 받아들였다. 1907년 3월까지 지휘부를 선임하고 조직을 정비한 양회일 의병부대는 4월 21일 200여 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능주(綾州) 관아와 화순의 주사청·우편소·경무서 등을 공격한 후 화순 헌병대 분파소와 화순성(和順城)까지 점령하였다. 이후 호남 의병들이 모여드는 광주(光州)로 북상하기 위해 화순과 동복(同福)의 접경지인 도매치(都埋峙) 인근에서 숙영하고 다음날 진군하기로 하였다. 4월 23일 아침 너릿재에서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양회일과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고, 의병부대도 해산되었다. 이때 양회일 의병부대에서 함께 활동하였지만 붙잡히지 않았고, 이후 양회일 등이 풀려나 다시 의병부대를 재건할 때 다시 동참하였다. 1908년 초 양회일이 이백래(李白來)·이윤선(李允善)·임창모(林昌模) 등과 함께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통해 의병부대를 재건하였다. 그해 6월 16일 장흥헌병대와 교전할 때 참여하였다. 이때 양회일이 붙잡혀 사망하자, 이후 은둔생활을 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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