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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公涉

崔公涉

1902. 4.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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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公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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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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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2년 4월 6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화개면(華蓋面,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강화군 서도면(西島面) 주문도(注文島)에 거주하였고, 기독교계 영생학교 교사였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1919년 3월 18일 강화군 부내면(府內面) 읍내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화군 부내면 읍내장터 만세시위는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에 거주하며 금은세공업에 종사하던 유봉진(劉鳳鎭)이 황도문(黃道文)·황유부(黃有富)·염성오(廉成五)·장윤백(張允伯) 등과 함께 전개하였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계의 지도급 인사였고, 특히 유봉진은 한말 강화도를 수비하던 진위대 출신이면서 강화 길직교회 신자였다. 이들은 거사일을 읍내 장날인 3월 18일로 정하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유인물을 200~250장 정도 제작하였다. 이것은 「강화 인민에게」와 「독립가」 등 3~4가지인데, 연희전문학교 학생인 황도문이 서울에서 가져온 인쇄물을 참고한 것이다. 3월 12일 유봉진은 만세시위 참가를 독려하기 위하여 각 섬을 순회하던 도중 주문도에 왔다. 그리고 3월 16일 오후 9시경 주문도에 있는 교회에서 120여 명의 신자에게 연설을 하였다. 이때 신약전서에 나오는 ‘의리를 구하라’라는 문장을 설명하면서 “침묵하지 말고 독립 만세를 불러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일으키자”라고 호소하였다. 이어서 결사대 구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참여할 것을 촉구하자, 여기에 동조하고 결사대에 가담하였다. 유봉진과 함께 3월 17일 주문도를 떠나 강화 읍내로 갔다. 만세운동 당일인 3월 18일 시장에 나온 군중과 함께 활동 편의를 위해 무명천으로 발을 감쌌다. 긴장감이 고조되던 오후 2시경 결사대원의 한 명으로 강화 시장의 한 가운데 있는 돌다리에 섰다. 그리고 냇가 양쪽에 운집한 군중을 향해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불렀다. 1만 명에 이른 군중은 결사대의 외침에 호응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유봉진은 백마를 타고 선두에 섰으며, ‘결사대 유봉진’이라고 쓴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이들과 함께 객사와 공자묘를 거쳐 강화경찰서로 이동하여 이미 체포된 유희철(劉熙哲) 등 세 명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또한 강화군수 이봉종(李鳳鍾)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시위는 밤 11시경 시장에 집결하여 만세를 크게 외친 뒤 해산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이날 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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