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弘文
鄭弘文1888. 2. 18 ~ 1928. 10.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강화군 부내면 읍내(3.1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8년 2월 18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현 인청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官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강화장터에서 갓(笠) 수선업에 종사하였다. 강화도에서는 기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18일 강화 읍내 장터에서 약 10,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의 유봉진(劉鳳鎭), 선두리의 황도문(黃道文)·황유부(黃有富)·염성오(廉成五)·장윤백(張允伯) 등 감리교계의 기독교 인사들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한국 독립이라는 취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강화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유봉진·황도문·염성오·장윤백 등은 3월 11일 황유부의 집에 모여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강화 읍내 장터의 장날인 3월 18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문」, 「강화 인민에게」, 『국민회보』 등의 인쇄 및 만세시위에서 주민들과 함께 부를 「독립가」 등을 제작하였다. 기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강화도의 각 지역별 연락망을 통해 만세운동에 대한 사전 연락을 받고,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참여를 결정하였다. 3월 18일 장터로 나가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윗 장터와 아랫 장터로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은 주민들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장터에 모인 주민들의 숫자는 무려 10,000여 명이나 되었다. 오후 2시경 유희철(劉熙哲)·황일남(黃日男)·황윤실(黃允實) 등의 결사대원들이 장터의 한복판으로 나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장터에 나온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 따라 외쳤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10,0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호령하는 유봉진 등의 지휘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장터에서 강화향교(江華鄕校)를 거쳐 군청으로 진출하였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강화경찰서의 일제 경찰이 출동하였다.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고압적인 자세로 해산을 명령하며, 선두에서 결사대원으로 활동하던 유희철과 조기신(趙基信) 등을 체포하여 강제 연행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 경찰의 강압적인 모습은 10,000여 명의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였다. 유봉진 등의 지휘에 따라 강화경찰서 및 강화군청으로 행진하여, 유봉진·이봉석(李奉石)·김용순(金龍順)·이사국(李思國)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구속자의 석방 및 앞서 강화장터에서 주민들을 향해 칼을 뽑았던 순사를 인도할 것과 한인 경찰 및 관리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압박에 의해 군수 이봉종(李鳳鍾)은 순순히 ‘조선독립만세’를 외쳤고, 일제 경찰은 결국 유희철과 조기신 등 체포한 결사대원들을 석방하였다. 이에 주민들과 함께 강화 읍내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밤늦게까지 지속하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강화도로 증원된 일제 군경과 대대적인 참여자 조사,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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