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弘朝
鄭弘朝1888. 5. 25 ~ 1954. 9.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 홍성시장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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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8년 5월 2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태어났다.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 시위는 서당에서 훈장을 하던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의 독립만세 운동을 인지한 민영갑은 평소 신뢰하는 인물인 이재만(李載萬)과 의기투합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결합하면서 금마면의 만세 운동이 구체화되었다. 민영갑 등은 가산리(佳山里) 소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1919년 4월 1일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이때를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한참 연극이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관객으로 참석하고 있던 민영갑, 이재만 등이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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