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化中
鄭化中1888. 7. 7 ~ 1931. 8.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영동군 학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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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888년 7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해영(鄭海永)이다. 1919년 3월 29일 학산면 서산리(鋤山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동군에서는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영향과 함께 일제의 가혹한 노동력 수탈에 불만이 폭발한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험준한 산악 지대인 영동과 전라북도 무주(茂朱)를 연결하는 도로공사에 부역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이 도로공사는 사망과 부상 등의 위험이 높아 주민들의 노동력 수탈과 함께 큰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1919년 3월 29일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김승림(金升林)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김승림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평소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에 김승림을 중심으로 마을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며 친분이 두터웠던 박두업(朴斗業)·박원보(朴元甫)·여중선(呂中仙)·여규병(呂圭炳)·여구일(呂九一)·여구방(呂九芳)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강제로 노동력을 징발당해 불만이 매우 높았던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에 동원된 주민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고자 하였다. 3월 29일 아침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 현장에 있던 주민들을 향해 김승림과 함께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즉각적으로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고, 함께 면소재지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서산리에 도착한 후 수백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서산경찰관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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