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을
高在乙187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흥업단(興業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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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1)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신이다. 1921년 당시 51세였기 때문에 1871년생으로 추정된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조직된 흥업단(興業團)에 소속되어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흥업단은 1919년 7월 푸쑹현에서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로 단장 김호(金虎)를 중심으로 부단장 김혁(金赫), 총무 윤세복(尹世復) 등으로 구성되었다. 흥업단은 각 현(縣)에 지단을 설치하고, 만주로 이주하는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무소(鍊武所)에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단원들을 무장시킨 후 일본 군경에 저항하는 무장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특히 병농(兵農)을 함께 시행하는 정책을 기조로 하여 지역사회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군사력 증강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1개 지단과 2개 지부를 설치하였다. 1921년 당시 총 단원 수는 약 150명에서 200명에 이르렀다. 단원들은 주민들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통신원과 무장투쟁을 담당하는 경호원으로 나누어 군자금 모금과 무장투쟁의 역할 분담을 하였다. 1921년 당시 제2지부에 소속되어 지부장(支部長) 역할을 하였다. 당시 2지부에는 통신원 39명, 경호원 20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주요 조직원은 고문 김곡(金曲), 총무 심관용(沈寬用), 재무 정도일(鄭道日), 서기 고장룡(高張龍), 문서 담당 한석도(韓錫道), 경호부장 조완술(趙完述), 통신부장 한정식(韓正植), 서기 탁문환(卓文煥) 등이었다. 2지부는 권총 8정을 소지하고, 탄약 300발을 보유하고 있어 지단과 1지부에 비해 뛰어난 화력을 지니지는 못하였지만 무장단체를 형성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흥업단이 위치한 푸쑹현은 인근의 백두산으로 인해 산악이 중첩되어 이어져 있는 천연의 요새지였다. 따라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흥업단은 청산리대첩 이후 남만주 창바이현(長白縣)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과 더불어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1921년 6월 10일 중국의 창바이현 일대에서 활동 중인 흥업단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행동 상황을 주시하여 조사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1921년 10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단체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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