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일
孔在一1881. 10. 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이원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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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81년 10월 2일경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고암리(古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39세로 3월 이원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명태 판매상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7일 이원군 동면(東面) 의덕리(儀德里)에 거주하던 이도재(李道在)는 서울에서 온 기독교인 박용해(朴龍海)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를 얻었다. 그길로 동면(東面)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을 찾아가 논의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조선독립단 이원 지단’을 결성하였다. 단원은 이도재·김병준을 비롯하여 박승룡(朴承龍)·공시우(孔時祐)·장홍규(張弘奎) 등 13명이었다. 이들은 거사를 서면에 자리한 이원 읍내에서 3월 10일에 전개하기로 하고, 전날 선언서 500여 매를 제작하여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선언서의 내용은 ‘우리 한국 민족은 세계 대세에 따라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여 한국 독립을 선언하여 2천만 동포에 고한다’라는 것이었다. 거사 당일 오전 11시 반경, 700여 명의 군중이 서면 이원 읍내 시장에 모여 있었다. 이도재 등의 주동자는 군중 앞에 서서 독립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행진을 시작하자 긴급 출동한 경찰이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날 시위를 기폭제로 이원군 시위는 확산하였다. 다음 날에는 남면(南面)의 차호리(遮湖里)와 상화리(上化里), 그리고 군선항(群仙港)에서, 3월 14일에는 동면 곡구리(谷口里)에서 만세 시위가 잇달았다. 3월 20일에는 다시 서면 이원 읍내 천도교당 앞에 1,5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원군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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