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권응
郭權膺1895. 1. 7 ~ 1950. 6.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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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9) 1895년 1월 7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재경리면(在京里面) 망덕리(望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기독교도로서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로 재직하며 평양부 신양리(新陽里)에 거주하였다. 3월 1일 숭덕학교에서 기독교(장로회) 신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만세 시위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평양의 기독교계는 3·1운동을 펼치기 위해 1919년 2월 중순부터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승훈(李昇薰)과 함께 치밀한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2월 12일 평양 기독교서원(基督敎書院會)에서 열린 1차 준비 회의에 참석하였다. 윤원삼(尹愿三)·안세환(安世桓)과 함께 일본 도쿄(東京) 유학생의 2·8독립선언 관련 신문기사를 보고,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이후 2차·3차 회의가 열려 서울 지역과 준비 상황을 공유하였다. 2월 25일 숭현여학교(崇賢女學校) 사무실에서 4차 준비 회의가 진행되었다. 정일선(丁一善)·안세환과 함께 참석해 만세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행사 순서와 담당자를 정하였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3월 1일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3월 1일 오후 1시 숭덕학교 교정이자 당시 평양에서 가장 큰 교회인 장로교 장대현(章臺峴)교회 앞마당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며 광무황제(고종)를 추모하는 봉도식(奉悼式)을 거행한 후, 오후 2시부터 독립선언식을 진행하였다. 독립선언식에서 애국가 봉창을 인도하고 동료 교사 황찬영(黃贊永)·윤원삼과 함께 현장에서 미리 준비한 수백 장의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목사 정일선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에 호응한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큰 거리로 진출하였다. 이윽고 남산현교회에서 집회를 연 감리교인 중심의 시위대 및 천도교인 시위대와 합세하였다. 청년·여성·보통학교 학생 등 광범위한 민중이 만세 운동을 함께하였으며 상인들도 철시하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만세를 부르며 평남도청과 재판소 앞 큰 거리를 누비고 평양역 광장까지 진출하였다. 만세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날의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예심판사에게 신문을 받을 때 “독립운동에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라고 밝혔다. 1919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9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어 징역 8개월(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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