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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용

郭大鎔

1895. 12. 12 ~ 1946.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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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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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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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12월 12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일죽면(一竹面) 장암리(長岩里)에서 곽기(郭箕)의 아들로 태어났다. 25세 때인 1919년 시천교(侍天敎) 교도로서 농업에 종사하며 장암리 구장(區長)을 맡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의 독립 선언 이후 각지에 확산되고 있던 만세 시위운동의 소식을 듣고 장암리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30일 읍내면 동리·서리·장기리에서 500~600명이 읍내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가 경찰서와 면사무소·군청에 몰려가 그날 밤 자정까지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는 4월 1일까지 계속되어 3월 31일에는 3,000여 명, 4월 1일에는 5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날 시위에서는 일본군의 발포로 2명이 사망하였다. 그러자 장암리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솔선하여 주민 200여 명을 모은 후 4월 2일 오전 1시경 이들을 이끌고 일죽면 주천리에 있던 주천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현장에서 주동자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였으나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이듬해 4월 6일 사면으로 출소하였다. 1937년 10월 중일전쟁 참전 일본군에게 보내기 위해 각종 위문품을 담은 위문대(慰問袋)를 안성경찰서에 ‘헌납’하였다. 또한 1939년 2월 11일 이른바 일제의 ‘기원절(紀元節)’에 안성군 일죽면장으로서 ‘농진·납세·저축공로자독행자’로 선정되어 조선총독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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