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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수

姜琪秀

1898. 11. 26 ~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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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기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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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山淸)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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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단성청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0)

관련 사건

  • · 함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0) 1898년 11월 26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도산면(都山面, 현 신안면) 소이리(所耳里)에서 태어나 함안군(咸安郡) 함안읍(咸安邑)에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강기수(姜璂秀)를 사용하였다. 1919년 금융조합 서기로 재직하던 중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한관렬(韓灌烈) 등과 함께 광무황제(고종)의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3월 1일 서울의 만세 운동에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함안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에 크게 자극을 받아 동지들과 함안 장날에 독립 만세 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대산면(大山面)의 한학 훈장 안지호(安知鎬)와 논의하여 시위 날짜를 정하고, 한종헌(韓鐘憲)·조한국(趙漢國) 및 안신학교 학생 대표인 김도권(金道權) 등과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며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9일 정오경 봉성동(鳳城洞)에 수백 명의 주민이 모이자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큰 소리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경 시위에 참여한 주민이 3,000여 명으로 늘어나 대규모의 시위대를 형성하자, 이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들이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격분한 시위대와 함께 도끼와 곤봉, 돌을 들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어 우체국·등기소·일본인 소학교 등의 건물을 부수는 등 격렬하게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5시 40분경 마산 중포병대대 준하사관 이하 16명과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재차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동 인물과 참여자들을 검거할 때 체포되었다.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1920년 8월 산청군 단성읍에서 개최된 단성청년회(丹城靑年會) 창립총회에서 간부로 선출되어 청년회를 이끌었다. 1921년 동아일보사 전주지국 산청분국장을 지냈다. 지역에서 청년을 계몽하는 사회활동을 이어가다가 재차 체포되어 1922년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다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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