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麟祚
郭祚1878 ~ 1920. 11.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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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1920년 당시 42세였던 점에서 1878년 출생한 것으로 보이며, 원적지는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동하면(東下面) 용산동(龍山洞)이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1920년 당시 펑톈성(奉天省) 퉁화현(通化縣)에 살면서 청년단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국경 지대인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은 물론 연해주와 동삼성(東三省) 일대에 서로군정서·북로군정서 등 수많은 항일 단체와 독립군단이 결성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8월 만주의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한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우고, 그해 10월 조작한 훈춘사건(琿春事件)을 구실로 이미 마련된 토벌 계획에 따라 한국주차군 제19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토벌대를 북간도 일대에 집중 투입하였다. 동시에 남만주에도 이곳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을 토벌할 목적으로 남만주 주둔 관동군 스키야마(杉山) 대좌가 지휘하는 보병 제19연대와 메나카(目中) 중좌가 지휘하는 기병 제20연대를 투입하였다. 이들 부대는 친일 단체인 보민회원 가운데 이곳 사정에 밝고 독립운동가를 체포한 경험이 있는 자들을 조사원으로 임명하고, 이들을 앞세워 싱징(興京)·퉁화(通化)·환런(桓仁)·관뎬현(寬甸縣) 등지를 차례로 토벌하였다. 1920년 11월 4일 퉁화현에서 청년단 서기로 활동하던 중 퉁화현 앵영동(鶯營洞)에서 보민단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1월 11일 일본 영사관에 인도하기 위해 압송되어 가다가 저항을 하자 장차 보민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일본군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체포된 청년단 동지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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